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삼국시대 검법, 고구려 검술, 신라 검술, 백제 검법, 고려 검술, 조선 검술, 검법의 종류

검법에 대해서 알아보자.

출처 : http://cafe.daum.net/hd3123/GfgS/37




1. 고구려의 검법 


유유(紐由)가 장백류 검법의 창시자로 이를 일으켰다.

고구려시대에 출중한 장수들을 열거해 보면(역사에 등장한 인물) 을지문덕,연개소문,양만춘,

강이식,온달,호동왕자 등이 있고, 왕으로서 문무를 겸한 경우는 동명성왕과 광개토왕을 들

수 있겠다.

유유는 고구려의 동천왕(東川王)을 구한 당대의 무사였다. 고구려가 위(魏)나라와 맺은 약속에 

의하면 요동땅은 마땅히 고구려가 차지하도록 되어 있었다.

위 나라는 이러한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고구려를 업수이 여기고 침략해 왔을 때 밀우(密友)와 

유유가 이들과 대적하여 고구려를 구하였으며, 유유는 뛰어난 검술로 위나라 장수를 찔러 죽이고 함께 자진, 고구려의 위난을 면하게 했다. 










2. 신라의 검법 


황창(黃倡)랑이 창시자로서 본국검법을 일으켰다.

이 검법은 일본에도 건너갔다는 기록이 있다.

신라 시대의 검법은 화랑들에게 교습되었으며, 훌륭한 무사를 많이 배출케 했다. 김유신, 품일,

관창, 사다함, 김인문,장보고 등이 있고 나중에 왕이 된 김춘추(무열왕)를 빼 놓을 수 없다. 










3. 백제의 검법 


백제의 검법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유파를 알 수는 없으나, 일본의 검도사에는 

왕인(王仁)이 검술의 비법 등 각종 문화를 전승했다고 쓰여 있다. 이런 점과 삼국시대에의 

여러가지 자료에 의해서도 검술 등 무예가 상당 수준에 있었겠지만 상세히 알길이 없다.

역사적으로 이름을 떨친 장군은 계백,흑치상지 등 사서를 통해 보이는 장수는 별로 없다.

왕으로서는 동성대왕, 성왕, 무왕을 들 수 있겠다. 










4.고려시대의 검법 


전술한 바와 같이 고려가 신라를 멸하고 새로운 통일 왕조를 수립하였으나, 역시 신라의 문화와

잘 배합한 정치를 했으면서도 무인들을 우대했던 것으로 보아 무예의 발전이 있었으리라 생각되고 고구려의 검법과 신라의 검법이 병용되었을 것 같다.

저명한 장군은 서희, 강감찬, 최영, 윤관, 백중손등이 있고 문무를 겸한 김 부식도 있었다. 왕건은 고려를 창건한 무장이며, 태조임은 다아는 사실이다. 










5. 조선시대의 조선검법 


이성계가 고려를 멸하고 이씨 조선을 창건하였거니와 무인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축소되었던 

시대이기도 하다. 그러나 당쟁과 무사안일주의에 젖어 있던 중 임진왜란이라는 호된 국난을

당하고서부터는 무법 연구가 활발해 졌다. 이 때의 검법등은 전술한 바 있지만 신라의 본국

검법을 비롯하여 11문의 검술이 연구되고 교습되었다.

이 때의 저명한 무장은 권율, 임경업, 김종서, 이순신, 김덕령, 곽재우 등이 있다.